오늘도! 안녕하세요😁
벚꽃🌸이 폈다
눈⛄️이 왔다
비🌧가 왔다
오락가락한 날씨에
결국
따뜻한 날씨를 맞이한 요즘
우리에게 "따뜻함☕️"을 선사하는 작가,
장욱진(1917-1990)을 만나보려 합니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성황리에 개인전*을 개최하며
우리에게 더 친근해지고 익숙해졌는데요
*MMCA 덕수궁,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2023.09.14.-2024.02.12.
다시 한번 그와 그의 작품을 떠올리며
장욱진(1917-1990)의 따뜻함음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1. WHO IS, 장욱진(B. 1917 - D. 1990)
1918년 1월 8일
충청남도 연기군(現,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초등학생때 부터 공부보다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습니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現, 경북중고등학교) 미술반에서
일본 도쿄예대 출신 미술교사을 통해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 피카소"를 접하였으며
일본인 역사 교사에게 항의하여 퇴학당한 후에는
그의 스승이자 화백, 공영진 화실에서 그림을 계속 그렸습니다
1936년, 20살의 나이로
양정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다시 들어가
일본🇯🇵 도쿄 데이코쿠미술학교(帝国美術学校, 무사시노미술대학) 서양학과에
1939년 4월 입학하여 1943년 9월 졸업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체육특기생"으로 양정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다는 사실🤣🤣🤣)
장욱진은 화단의 움직임이나 학교의 영향보다
간접매체(서적 등)를 통해 민족적·토속적 기원과 고유의 정체성이 뚜렷한 미술품에 더욱 관심을 가졌으며
1947년에는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백영수, 이중섭과 <신사실파>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신사실파>의 철학처럼
장욱진은 자연 사물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 내재해있는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했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화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장욱진(1917-1990)은
1945년부터 1947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했고
1954년부터 1960년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근무하였으나
이후에는 시골(덕소, 수안보, 용인)에 화실을 마련하여
자연과 더불어 그림에 전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실(화실)을 기준으로
장욱진의 작품 특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2. 덕소, 명륜동, 수안보, 용인
작업실(화실)을 기준으로
작품을 둘러보기에 앞서
21세(1937년)부터 서울대 교수를 사임할 때(1960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 단체 등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
1937년(21세), 조선일보 주최 <제2회 전국학생미전> 사장상(최고상)& 중등부 특선상🏆
1940년(24세),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1951년(35세), 한국전쟁으로 고향(연기군)으로 귀국하여 <자화상> 제작
이외에도, 1957년 <동양미술전> 1958년 <한국현대회화전>, 1961년 <2·9동인전> 등
다양한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였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가로 전념한 시기의 작품들을 둘러보겠습니다
✌️
"덕소(1963년-1975년)"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삼패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395-1번지
⏫ 작가의 작업실 위치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독차적 스타일 모색하며 구축해 나간 시기로
두꺼움 질감과 강한 붓터치가 처음 시도되는 시기입니다
윤곽선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작품이 많으며
후반기에는 수묵화적 유화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가족과 떨어져서 작업을 지내다보니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마움의 감정이 강조된 작품들도 제작됩니다
명륜동 집에 머물던 중,
예불에 열종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덕소 작업실에서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그린 아내(이순경 여사)의 첫번째 초상화, <진진묘>
'진진묘'는 아내 이순경 여사의 법명이기도 합니다~
"명륜동(1975년-1979년)"
명륜동은 1953년부터 용인(신길)로 이전하는 1986년까지
가족들과 거주하였던 공간이었으며
덕소생활을 청산하고 명륜동 양옥 뒤 한옥을 마련하여
화실로 꾸며 작업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수묵화 기법과 도가적 소재를 통해 전통회화를 단순화시켰고
다시 가족들과 살게 되면서 가족 초상화가 더욱 자주 나타났으며
여행을 하며 매직과 사인펜으로 그린 시골풍경 위주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부인의 영향으로 절을 유람하며 종교적 성향도 짙게 나타나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가 제작됩니다
"수안보(1980년-1985년)"
충청북도 수안보 온천동네 뒤 탑동마을(현, 중청북도 중원군 상모면 온천리)
⏫ 작가의 작업실 위치
산수화적 경향과 수묵화적 유화의 기량이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실경 위주의 산수화가 제작된 시기입니다
그러면서 후기로 갈수록 점점 관념화*로 발전되는 모습이 발견됩니다
*관념화 : 작가가 현실의 사물이나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내면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반영한 작품. 자연 풍경을 단순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을 통해 작가의 철학적 사유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관념화라고 함
"용인(신길, 1986년-1990년)"
먹그림풍 유화의 풍경이 줄어들고
환상적이며 관념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시기로
다양하고 파격적 스타일, 구도 등 자유로운 표현이 나타납니다
본인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쓰고자
마지막까지 미술에 전념한
장욱진(1917-1990) 작품들을 감상해 봅시다
3. 마치며
특히, 일상적인 소재
"가족👨👩👧👦, 나무🌳, 까치🐦, 해☀️, 달🌝 "을 주로 사용
유화작품의 60%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무엇보다
작업실을 이전하고 시간이 흐르며
작품의 모습은 다변화하였지만
작가에게서 변하지 않는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
이였으며,
화풍, 기법, 도구, 시기는 모두 달라도
장욱진(1917-1990)은
자신의 근원인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자신만의 담담하고 따뜻한 미술언어로
표현하였습니다
작품의 주인공, 그의 가족은
역사학자 이병도(李丙燾, 1896-1989)의 맏딸, 이순경(李舜卿, 1920-2022)과
1941년 결혼한 후, 1남 4녀(정순👦🏻, 경수👧🏻, 휘순👧🏻, 혜수👧🏻, 윤미👧🏻)로 이뤄졌으며
그의 아내🤵🏻♀️, 이순경 여사는 서울 혜화동에서 '동양서림' 서점을 운영하며
생계와 장욱진의 예술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장욱진(1917-1990)
그가 남긴 말처럼
장욱진(1917-1990)은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그림에 바쳐 살았기에
유독 그의 그림이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
다음에 또 다른 작가와 작품을 통해 만나요~
👋👋👋
장욱진미술문화재단
화가 장욱진의 작품 및 재단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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