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만의 작가 컬렉팅

[KOR] 박수근 (B. 1914 - D. 1965)

728x90

오늘도! 안녕하세요😁

개인 일정을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돌아 왔습니다🙇‍♂️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에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펼쳤다"라는 평으로
 
작품을 보면
'어떻게 그렸을까?'
몹시 궁금해지는
박수근(1914-1965)을
만나 봅시다
🤝
👀


1. 박수근(B. 1914 - D. 1965)은 누구인가

박수근 사진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부유한 집안에서
3남 3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광산사업 실패로
집안이 어려워졌고
그의 최종학력은
양구공립보통학교🏫 입니다
 
그러나
그의 담임교사 오득영(1904-1991)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을 해주었고
 
박수근(1914-1965)은 독학을 통해
「조선미술전람회」에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출품하며
미술계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박수근(1914-1965)은
1940년 2월 10일
김복순 여사와 결혼을 하고
"평안남도 도청 서기직, 금성중학교 미술교사, 부두 노동자, 미8군 PX 초상화가"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4남 2녀를 얻었으나
장남과 3남을 잃는 아픔도 있었으며

* 장남 성소, 장녀 인숙, 차남 성남, 3남 성인, 4남 성민, 차녀 인애

한국전쟁으로 남한(한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및 국내 주요 단체전, 해외 순회전에 참여하며
중견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으며
 
창신동에 살았던
1953년부터 1963년까지 동안
가장 의욕적으로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
 
그러나
1963년 11월
집의 대지권 소유권 분쟁으로 창신동 집을 잃고
백내장으로 왼쪽 눈이 실명한 뒤
과음으로 간과 신장이 나빠져
1965년 5월 6일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어진 환경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미술 기법을 연마하며 성장한
박수근(1914-1965)
 
미술에 대한
그의 절실함과 간절함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지 않을까 합니다
👏👏👏


2. "독학, PX, 유화"

"독학"

박수근(1914-1965)
아버지의 광산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면서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 했으나
 
스스로 길을 찾아가며
자신만의 미술 세계관을 완성하였는데요

(진짜, 대단하고 존경하는 부분👍)

 
12살 무렵 책에서 접한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 <The Angelus, 만종>을 보고
감동해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될꺼야!"라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The Angelus, Jean François Millet, 1857-1859, 66 X 55 cm, Musée d’Orsay, Paris

 
예술학교, 미술학원은 꿈도 꿀 수 없었던
박수근(1914-1965)
「조선미술전람회」가 유일한 등용문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신문, 도판, 관광엽서 등을 통해
당시 미술 트렌드를 읽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를 보며
될려고 성실히 노력하면 결국 된다는
"될놈될"의 새로운 정의를 내려봅니다

 
박수근(1914-1965)이 바라 본
당시 트렌드는
"농가의 풍경, 시골 아낙과 소녀, 빨래하는 여성, 지게를 진 남성, 담뱃대를 문 노인, 아기를 없은 소녀 등"
풍속적 이미지였고
 
해당 이미지와 주제가
그가 평생동안 활용하는
주요 소재이자 특징이 되었습니다
🤩
 
우리가 현재 만나 볼 수 있는
박수근(1914-1965)의 대부분은
1950년대 이후 작품들로
 
독학으로 빚은
그의 초기 작품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강원도 금성에 두고 와
대부분 소실되었고
 
<철쭉>, <겨울풍경>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에 수록된 6점의 흑백사진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철쭉, 박수근, 1933, Watercolor on paper, 36 X 45 cm, 개인소장
겨울풍경, 박수근, 1934, Watercolor on paper, 37 X 58 cm, 개인소장

 
박수근(1914-1965)
1932년, 18세에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
<봄이 오다>를 출품하며
"첫 입선"이라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

봄이 오다, 박수근, 1932, Watercolor on paper, 복제본(원본소실)

 
박수근(1914-1965)
수채화로 미술작품을 시작했으며
1938년 이후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PX"

김복순 여사와 결혼을 한
박수근(1914-1965)
남편이자 가장으로써
다양한 직업을 가졌고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평안남도 도청 서기직, 금성중학교 미술교사, 부두 노동자, 미8군 PX 초상화가
 
전업화가가 되기 전,
미8군 PX 초상화가로 일하며
중요한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미8군 PX (現, 신세계백화점 본점)

 
박수근(1914-1965)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으로
소설가 박완서(1931-2011)를 만났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내몰린 어색한 공간에 있다는 현실
전쟁으로 돌아갈 수 없게된 고향, 북한
이러한 공통점으로
친해지게 되었고
 
박완서(1931-2011)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다른 박수근(1914-1965)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훗날
박완서(1931-2011)는 장편소설 <나목>(1970)을 출간하게 되는데
그녀의 소설을 통해
박수근(1914-1965)은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당시 그가 얼마나 가난하고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그의 삶을 증언하게 됩니다
 

"어리석지 않게 선량한 눈을 하고 상심이 짙게 밴 음성을 가진 박수근은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도 본성을 훼손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 애쓰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박완서, <나목> 中

 
그가 생계를 위해 그린 그림들은
펜화, 판화, 프로타주(Frottage) 등 다양했고
"단순성, 흑백대비, 거친 질감"
특징으로 발현되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기법을 거듭하고
회화 양식을 다듬어가며
자신만의 훈련법을 통해
이런 특징들을 유화작품으로 이어갔습니다

감, 박수근, 1952, Oil paint on canvas, 33 X 45 cm, 개인소장
도마 위의 굴비, 박수근, 1952, Oil paint on canvas, 38 X 45.5 cm, 개인소장, Source : 한겨례 노형석 기자님
기름장수, 박수근, 1953, Oil paint on hardboard, 29.3 X 16.7 cm, 개인소장
풍경, 박수근, 1959, Pastel and pencil on paper, 33 X 26 cm, MMCA
화구, 박수근, 1962, Watercolor on paper, 24 X 24 cm,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과일이 있는 정물, 박수근, 1950s-1960s, Watercolor on paper, 25.5 X 31.5 cm,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전매> 표지화, <한국전력> 표지화, 한국전력 사보 삽화'에서도 
박수근(1914-1965)을 만나 볼 수 있으며


딱! 떠오르는 느낌을 가진 그의 그림은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의 특징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유화"

1953년
박수근(1914-1965)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집, 박수근, 1953, Oil paint on papaer, 80.3 X 100 cm, MMCA, 서울미술관


국내 주요 단체전과 해외 순회전에 참여하며

박수근(1914-1965), 자신을 널리 알려왔으나,

정작

생전 개인전을 개최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
 
1954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산, 박수근, 1950년대, Oil paint on canvas, 53.5 X 80.5 cm, MMCA
길가에서, 박수근, 1957, Oil paint on canvas, 107.5 X 53 cm, 개인소장

  
박수근(1914-1965)에게 중요한 요소는

"질감과 선"으로
캔버스나 판지 바탕에 여러 겹의 물감층을 쌓은 후
그 위에 굴고 검은 선으로 인물의 윤곽을 그려나갔습니다

 

그 중 가장 대작인

<농악>을 소개해드리자면

농악, 박수근, 1960년대, Oil paint on canvas, 161.5 X 96.7 cm, MMCA

 

1962년 무렵부터

'농악'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7점이며

<농악>은 그중 가장 대작입니다

 
이러한 두꺼운 화면 질감은

"화강암"과 비교되는데
박수근(1914-1965), 자신은

"석물, 석탑, 석불에서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고 조형화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3. 마치며

박수근의 삶과 작품을 살펴보며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저는
"절실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가 결국 될놈될을 만든다"
생각이 드는데요
 
여러분들도
하고싶은 일, 목표하는 일이
있으시면
절실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로
임해보자구요!!!

🙌🙌🙌🙌🙌
  
힘들고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우리에게
응원을 전하며
 
다음에 또 다른 작가와 작품을 통해 만나요~
👋👋👋

 

 

박수근미술관

· 2025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예술교육강사 서류전형 합격자 안내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삶과 예술, 그리고 예술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유아,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가족

www.parksookeun.or.kr

 

구독🔔, 댓글👍, 좋아요❤️ 부탁드리며
🙏🙏🙏🙏🙏
궁금하거나 알고싶은 작가있으시면
언제든 말씀 부탁드리며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

반응형